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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광주 충효동마을 정려비각과 왕버들,광주호)

  • LV 49 이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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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07 23:11

광주 충효동마을 정려비각과 왕버들, 광주호

광주 무등산 북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창평천과 함께 영산강에 합류하는 증암천 주변에는 삶의 현장이 넓은 들판과 가까우면서도 휴식을 생각하게 하는 계곡을 형성하고 있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많은 정자들을 세워놓고 자연을 즐겼다. 송강 정철로 대표되는 가사문학의 산실로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등 대표적인 정자와 정원이다. 그 중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의 바탕이 되었던 식영정 부근은 댐으로 막아 넓은 호수로 변하여 옛모습이라 보기는 힘들지만,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식영정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광주호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수령이 수백년된 왕버드나무 3그루가 심어져 있는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원래 일송일매오류라 하여 소나무 1그루, 매화나무 1그루, 왕버드나무 5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지금은 왕버드나무 3그루가 남아 있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덕령 형제들을 배출하여 정조로부터 '충효리'라는 마을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충효동정려비각이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다. 마을 뒷동산에는 조선중기 문신 김윤제가 후학을 가르치던 정자인 환벽당이 있다. 마을 입구 증암천을 거너는 다리를 기준으로 식영정과 소쇄원이 있는 동쪽은 담양군, 환벽당이 있는 서쪽은 광주광역시에 속한다. 



가사문학의 산실 식영정에서 내려다 본 광주 충효동마을 주변 광주호 수변 공원. 지금은 댐으로 막혀 호수가 되어, 송강 정철이 식영정에서 즐겼던 경치와는 다르겠지만 호수로 바뀐 지금도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충효동 왕버들, 광주시 북구 충효동
이 왕버들  세그루의 높이는 10m 내외, 둘레는 6m 정도이며 수령은 약400년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 마을에는 일송일매오류라 하여 소나무 한그루, 매화나무 한그루, 왕버들 다섯 그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왕버들 세 그루만 남아 있다. 이 일대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등 유서깊은 정자와 빼어난 풍광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출처:광주시청>

 



충효동 마을 입구에 있는 왕버드나무 3그루. 둘레 6m의 엄청나게 굵고 가지가 아름답게 뻗어나갔다. 원래는 소나무 1그루, 매화나무 1그루, 왕버드나무 5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나란이 자라고 있는 2그루의 왕버드나무

 



왕버드나무

 



안쪽에 홀로 서 있는 왕버드나무

 



왕버드나무

충효동정려비각,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충장공 김덕령과 형 덕홍, 아우 덕보, 부인 홍양이씨 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1788년(정조12) 왕명으로 '충효리'라는 마을 이름을 하사 받고 이듬에 그 유래를 밝힌 이 비를 세웠다. 비각은 정면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1792년에 처음 세웠다. <출처: 광주시청>

 



이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김덕령 형제를 배출하여 정조로부터 '충효리'라는 마을 이름을 하사받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려비각이다.

 



충효동 정려비각. 건물을 꽤 크게 지었다.

 



정려비각에 걸려 있는 현판

 



비석

 



충효동 마을 동쪽으로 흐르는 증암천. 건너편 언덕에 가사문학의 산실인 식영정이 있다.

 



증암천 상류 방향

 



환벽당으로 들어가는 길

 



증암천을 막아 조성한 광주호 전경
출처)http://younghwan12.tistory.com/4128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곳이 3곳입니다.

태어난곳- 광주시충효동, 에서 세살때 부모님을 따라 파주로 이사 하여

자라난곳은 경기도 파주시  문산 ,임진각과  판문점 으로 가는 길목이 있는 고장 입니다.

그곳에서 청년기를 지낸후에,

하나님의 명령으로 경남 거제도 ,이곳에 온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아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 이곳 거제도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도책을 찾아가며 와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곳 예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쓰기로 하고....

부모님께서 위의 사진이 있는 광주시 충효동 이고장에서 저를 낳으셨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아름다운 곳 이었네요.

어려서 부터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던 생각이 납니다.

매일 할머니 품에서 자랐으므로 자연히 입에 밴 사투리가 오랬동안 고쳐지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은...먼저 간단하게나마 저의 부모님의 예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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